2009년 9월 26일 토요일

쉼, 바닷바람을 맞다.

오랫만의 쉼.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없이 앞만 보고 달린 것 같다. 그런 나 자신에게 오랫만에 휴가를 주었다. 비록 1박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날 텔레비젼 모 프로그램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곳이 "문지방"이라고 한다. 이 문지방만을 넘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하는데, 휴가 첫날 나 역시 이 곳의 높은 벽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비용과 거리, 시간적인 요인들을 고려하여 최종 목적지는 부안으로 선정하였다. 전나무로 유명한 "내소사"를 향해 전주를 거쳐 부안, 다시 곰소를 지나 내소사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해는 서쪽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었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소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처음으로 나를 반긴 것은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였다. 전국의 유명 관광명소에서처럼...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곧이어 나를 반긴 것은 걸음 걸이마다 자그마한 돌과 신발의 화모니인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아름드리 전나무였다. 물론 내소사의 여러가지 중에서 가장 나를 반긴 것은 매표소이지만 말이다.

소문으로 들었던 아름드리 전나무 터널과 비포장 도로, 여느 절과는 다른 내소사만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MP3의 기계음을 끄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니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 한 걸음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며 신발과 자갈의 대화소리, 내 발자국 소리와 절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검음은 흡사 한 곡의 교향곡을 듣는 것 같다.

전나무 터널을 지나면 벚나무와 팽나무 터널이 기다린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는 기분이다. 사천왕문을 지나 높은 축대위의 웅장한 건축물들 사이로 다 기울어져가는 해우소가 돋보인다. 다른 절 같았으면 벌써 허물어졌을텐데... 비록 허물어져가는 해우소이지만, 이 촌넘에겐 왜 이리 정감이 가는지...
최근 화재가 났었는지 검게 그을린 선명히 남아 있는 설선당과 요사. 2층 누각의 웅장한 기둥과 주춧돌이 돋보이는 봉래루, 비록 단청이 바래 화려한 빛깔을 볼 수는 없었지만 화려한 꽃살문과 웅장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웅전을 보면서 또다시 입구에서 느꼈던 아우라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내소사 관람 후 직소폭포를 향해 산을 오르지만, 과연 해가 지기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불안감은 이내 곧 현실로 다가왔다. 산 중턱에 오르자마자 서산의 꼭대기에는 해가 이미 걸려있었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간반동안 힘차게 산을 올랐지만, 역시 무리다. 해는 이미 기울어졌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체, 산을 내려와야만 했다. 조금만 더 가면 직소폭포에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초행길이기에 욕심을 버리고 산을 내려왔다. 그렇지만 모처럼의 산행이었기에 기분이 너무 좋다.

능가산을 내려온 후 내소사 인근에서 민박을 할까 고민하다 곰소포구에 있는 찜질방에서 짐을 풀었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곰소포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늦은 저녁시간이라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

여러 사람들이 한 곳에 잠을 잤기에 몸이 조금은 찌푸둥하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한결 가볍다. 가방을 둘러메고 찜질방을 나와 곰소항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내심 곰소항의 염전을 보고 싶었지만 당초 목적지의 반대방향이기에, 다음 기회로 미루고 포구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한 참을 걸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가 나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제비 몇 마리가 춤을 춘다. 제비 사진을 찍다가 하늘을 보니, 전깃줄에 수백마리의 제비들이 열 지어 서 있었다.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차 소리에 놀랐는지 수십마리의 제비들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전깃줄에 열을 맞춰 앉는다. 수백마리의 제비를 한꺼번에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백마리의 제비떼를 뒤로 한 체, 다음 목적지인 채석광을 향해 북쪽으로 길을 걷는다. 격포행 시내버스의 배차간격이 2시간이라고 하니, 천천히 길을 걷다가 버스를 타면 되겠다는 생각에 목표를 향해 걷는다. 길을 걸으면서 차가 오는 소리가 나면 뒤를 돌아본다. 버스가 지나갈 시간은 아니지만, 혹여 버스가 지나가지는 않을까? 또는 어느 친절한 분이 나를 픽업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이정표를 따라 2시간 넘게 걷기를 한 후 15km라는 이정표를 보고 필자는 자포자기해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지나가는 분들의 도움을 내심 바랬지만, 소심한 필자이기에 무작정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약 10여분이 지난 후 바로 시내버스가 와서 쉽게 격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격포에 도착한 후 맨 먼저 채석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해안 주변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기암절벽과 편리, 검푸른 바다와 드넓은 모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내소사보다는 이곳을 먼저 시발지로 찾았다면, 어제 마시지 못한 맥주가 그리워 아쉬움이 남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청숭도 떨고, 쏘주 한 잔도 했을텐데.
아쉬움도 잠시, 혼자 놀기에 가장 좋은 장난감인 카메라를 꺼내 이곳저곳을 헤매며 셔터를 누른다. 나름 멋진 구도를 상상하며, 몸을 뉘었다가 앉았다 혹은 뒤틀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채석광의 기암절벽을 따라 항구와 저 멀리 등대가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항구 근처는 새롭게 항만을 구축하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부지런히 드나드는 고깃배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갈매기들로 장관이다.
최근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파제를 둘러 본 후 다른 곳의 방파제에도 가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나의 배꼽시계는 점심시간이 한참을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도보로 인해 조금은 피곤했기에 배꼽시계를 달랜이후 고민하기로 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 항구에 나가 항구 사람들의 땀냄새와 활기찬 모습을 보았다. 고깃배가 들어오면 전국으로 배달할 차량과 인근 식당 혹은 관광객들의 주문에 따라 열심히 고기를 담과 나루는 사람들, 팔짝팔짝 뛰거나 혹은 숨이 가뿐히 서서히 힘없이 물결에 몸을 맡기는 고기들, 고기의 양을 묵묵히 적는 사람, 필자처럼 이들의 모습을 관람하는 사람들, 한가로이 낚시질 하는 사람 등 항구는 다양한 사람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부안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한 체, 필자는 또 다시 일상이 있는 천안으로 향하였다. 저녁식사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필자의 마음이 조금은 조급해진다. 비록 늦더라도 꼭 저녁을 같이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