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3일 화요일

열쇠 분실의 서려움...

건망증이 심하지 않는 사람도 한두번쯤은 열쇠 혹은 지갑, 안경 등의 소지품을 분실한 경험이 한두번쯤은 있을 것이다. 좀더 자주 이러면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되지만...
필자 역시 건망증이 조금은 심해 하루에도 여러번 열쇠꾸러미 혹은 핸드폰, 지갑을 가방 혹은 호주머니에 넣지 않아 이들을 "업은 아기 삼 년 찾을 때"가 잦은 편이다. 사무실에서 혹은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은 심각한 상황이다. 아침에 열쇠를 가지고 나온 것 같은데, 퇴근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열쇠꾸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방과 서랍, 오늘 사무실내 이동한 공간 이곳저곳을 기욱거리며 뒤져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혹 "집에 두고 온 것인지, 다른 곳에서 분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날은... 정말도 무지 심각한 상황이다. 집에 함께 사는 식구들이 있으면 쉬이 문제가 해결되지만, 싱글족인 나에겐 오늘 그러한 행복은 주어지지 않았다. 불운의 연속이다. 낯선 손님의 등장이후...시련의 연속이다.
가느다라한 희망/요행을 바라며, 동거하는 후배에게 귀가 시간을 물어보니, 천안지역을 벗어난 외지에 있어 집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즉 외박을 하니 주변사람의 신세를 지라는 충고를 한다.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이마가 깨진다"고 하는데, 필자를 두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예전에 많이 해 봤던 방법 즉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수 밖에"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야근하면서 사무실에서 많이 자봤지만, 최근에는 전혀 없었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이 추운 엄동설한에... 사무실 공간이라는 아늑한 공간이 있어서.
어떤이는 이러한 상황에 필자보고 찜질방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고 하는데, 필자는 찜질방보다는 편안한 사무실 공간이 좀더 아늑하기에...

2008년 12월 21일 일요일

손님(?)이 들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조금은 멍한 상황이다.
집에 손님들이 오는 것 하니 집에 자주 후배 혹은 선배들이 오는데, 이번 껀 허락없이 아니 연락도 없이 왔다가 흔적만을 남기고 간다는 말도 없이 가니 어안이 벙벙하다.

손님(?)이 온 날은 지난 금요일 오후 아마 7시~8시로 추정된다. 사무실에서 일을 마친 후 터미널에 있는 영어학원으로 직행. 학원을 가는 중에 또다른 후배가 술 한잔하자고 연락이 와서 약속시간을 열시이후로 미루고 전화를 끊었다. 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후 대딩 후배를 만나기 위해 약송장소로 이동후 전화통화를 통해 다시 한번 시간확인을 했는데 당초 예상했던 9시가 아니라 10시 넘어서 아르바이트가 끝난다고 하기에 약속시간을 토요일로 옮기고 집으로 오면서 술 한잔하기로 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와 전화통화후 다시 연락을 준다하기에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집앞에서 방을 처다보니 베란다에 불이 켜져 있기에 같이 사는 후배 혹은 예전에 같이 살던 친구가 왔는가보다 생각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갔다.

열쇠로 문을 따지 않고 현관문을 돌리니 문이 열린다. 그러나 집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둘 중 하나가 잠깐 근처에 갔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뭔가 이상하다.
큰 방의 옷장들이 열려져 있고 침대위에는 가방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리고 책상위가 조금 더 널부러져 있고, 녹차 빈통으로 만들어진 저금통은 텅텅 비어 있다. 아.. 손님(?)이 들어온 것 같다. 기분이 칙칙하다.
침대위의 카메라 가방을 열어보니 렌즈는 그대로이다. 아아...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나의 재산목록의 순위안에 드는 물건들을 가지고 가지고 않아서 말이다. 아무래도 조무래기인 것 같다. 저금통안의 현금만을 가지고 갔으니 말이다.
어안이 벙벙해, 같이 사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나무란다. "문단속 좀 잘 하라"고 더불어 "손님이 왔다 갔다"고... 그 친구도 당황해한다. 그리고 문단속은 제대로 한 것 같다고..

때 마침 후배의 전화가 온다. "항상 만나던 곳에서 만나자"고. "알겠다"고 한 후 밖으로 나가려고 문단속을 할 순간에 조그마한 방을 쳐다보니 방범창이 뜯겨져 있다. 손님(?)은 현관문 옆의 조그마한 방의 방범창을 뜯어낸 후 창문 넘어 들어온 것 같다. 밖에서 기다리는 후배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한 후에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에 숙식자와 경비아저씨기 왔다.
방범창이 뜯겨진 곳을 보여주고 없어진 물건들은 없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관리사무소의 숙직분에게 방범창을 수리해 달라고 요청을 하니 주말에는 좀 힘들고 월요일쯤에는 가능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에 손님이 든 것에 대해 신고할 것인지를 묻는다.
크게 없어진 것이 없어 그냥 덮을 거라고 한 후에 최대한 빨리 수리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숙직하시는 분은 여전히 딴청이다. 그 분왈 "일진이 좋지 않아 8시 전후로 문단속과 혹 수상한 사람이 있을 경우 신고해 달라"는 방송만을 했다고 자랑이다.
나에게 그것보다도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관리소측의 대책과 방법창을 빨리 수리해주길 바라는데... 동상이몽이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난다. 사무실에선 재산목록 순위안에 드는 것을 도둑맞았는데...이번엔 다행이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일을 대충 마무리짓고 기다리고 있는 후배에게 가서 손님(?)이 왔었다고 하니 그 친구도 어이없어 한다.

한잔의 술, 아니 두잔 석잔의 술... 꿀꿀한 기분이 조금은 풀린다. 역시 우울한 날엔...

2008년 12월 13일 토요일

청소년 공공디자인 공모전을 마치며

지역에서 처음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공디자인 공모전을 진행하였다.

연초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몇년전부터 공공디자인에 대한 영역과 논의가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서 회자되고 있기에 지역 역시 높은 관심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천안시의 인구는 546,256명으로 이중 학생수는 97,850명(17.9%)이다. 초·중·고등학교가 118개로, 학교 홍보에 주안점을 두고 3-4개월의 응모시간과 방학기간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첫 공모전 마감일정(10월 6일(월))이 임박해도 출품작이 들어오거나 공모전과 관련하여 문의전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1차 연기를 11월 4일(화)까지 연기하였는데, 그나마 다행이게 소수의 몇 작품들이 접수되었다.

당초 의도했던 만큼의 작품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다시 2차로 12월 2일(화)까지 연기되었다. 그래서 8명의 학생들이 12개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단순히 공모 작품수만을 평가할 경우 실패작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 처음 진행한 만큼 공공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 부분은 긍정적인 평가라 보여진다.

공모전에서의 부족한 부분을 언급하면 첫째, 프로그램 공모전의 용어와 내용이 전반적으로 어려웠던 점이다. 공공디자인이라는 용어의 개념이 모호하고, 필자부터 명확한 개념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둘째, 홍보 판넬을 만들어 다양한 사례 예시를 문화존 행사와 홈페이지를 통해서 홍보를 했지만, 다중의 청소년들에게 입소문을 통해 전파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주변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모전 홍보물을 보여주면 관심을 보이거나, 재미있겠다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직접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려고 하면 힘들다고 혹은 바쁘다고 하면서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공모전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기 부여가 미약했던 부분이 아쉽다.

최근 공모전 출품작들을 중앙도서관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의예로 많은 친구들이 서성이며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서 공공기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였다면 지금보단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최근 사회분위기가 물질만능과 오직 결과만을 중시하기에 현물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그리고 다양한 공모전의 상금이 워낙 높게 책정되어 있기에 많은 상금을 주지 못할 경우에는 참가 동기부여도 낮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필자가 매년 프로그램 혹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만이 나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다음호에는 출품작들을 직접 보여주며 언급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된 작품들은 현재 중앙도서관 1층로비에 12월 14일(토)부터 12월 22(월) 전시되고 있다.

2008년 12월 8일 월요일

미술을 배우다(4)

그림을 소재로 글을 올린지 2주가 조금 넘은 듯 하다.
다시 지금 배우고 있는 미술을 대해 쓰려고 하니 조금은 쑥스럽다.

첫번째 그림은 지난번에 선 보였던 비행기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사진속의 비행기는 구름속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이었지만, 나는 보시는 바와 같이 폭탄하나를 투하하는 모습을 그렸다. 더불어 비행기를 조종사와 뒷좌석에서 기관총을 쏘는 부조종사, 비행기 앞의 프로펠라가 움직이는 모습이 이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필자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여기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두번째 그림의 주인공은 물방울이다. 원장님이 내가 비행기를 너무 힘들게 그리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비교적 쉬운 주제인 물방울 형제를 그리는 것을 과제로 주었다. 세밀화 그림에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지만 배경색의 색깔에 따라 비춰지는 물방울의 농도가 다름을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도화지의 흰색 배경에 물방울의 진하기를 달리하여 그림을 마무리하였다.

세번째는 무엇을 그렸는지 알 것이다. 그림 두점중의 하나는 미완성이기에 눈치가 빠른 이는 쉬이 구별하였을 것이다. 그렇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너구리다.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지낸사람은 한번쯤은 산속 혹은 길옆의 오솔길에서 봤을 것이고, 일본 에니메이션 대부라 불리우는 "미야자키 하야오 의 너구리 대소동"에서도 친근하게 만났던 녀석이다. 부러진 나무등궐에 살짝 걸터앉아 뭔가를 주시하는 강한 눈빛의 소유자인 너구리. 일명 탐욕의 화신으로도 불리우는 녀석이다. 이 녀석을 그릴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삐죽삐죽 튀어나온 털이다. 한올한올 결을 따라 털을 그려야하는 부분이 매우 어려웠다.

마지막 그림은 미완성작으로 다음번에 올라올 때는 전후의 그림을 비교하여 올릴 예정이지만, 지금 간단하게 선보이고자 한다. 녀석은 석류로 여성분들의 건강식품으로 많이 애용하는 녀석이다. 완전한 녀석은 구를 구린 후 약간의 형태들을 잡아 그렸지만, 석류를 반으로 자른 단면은 매우 힘이 들었다. 석류를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고, 석류 씨앗하나하나를 그리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우선 초안으로 그린 부분이라... 완성본을 본 후 추가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학원에서 그림을 배우는 시간이 즐거우면서도, 학원의 실내환기가 잘 되지 않아 조금은 고통스러울때가 많다. 특히 요즈음 건조한 시기라 눈에 자주 안약을 넣어야 하는 입장에선...그리고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저절로 나오는 하품을 멈출수가 없을때가 조금은 괴롭다. 집중이 잘 될 때는 괜찮지만, 다른 날에 비해 몸이 조금더 피곤할 경우엔 집중이 쉽지 않아, 이런때는 또 다른 고통이 되기도 한다.

배부른 자의 불만이던가..그렇지만 조금씩 나의 그림 솜씨가 늘어갈 땐 기분이 새롭다.

2008년 12월 7일 일요일

인연을 잇다.

오랫만의 문자.... 생각하지도 못했던 녀석의 문자다.

녀석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 대학교 1학년때 사회봉사활동으로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벌써 횟수로 4년째이다.

"내년 2월 졸업이고, 방학하기 전에 얼굴보고 고향으로 내려갔으면 한다"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면서, 벌써 세월이 그렇게 오래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1~2학년때에는 자원봉사도 많이 해주고 가끔씩 밥도 먹었는데, 3학년이 되면서부터 학업과 다른 일정때문에 자주 못보고 연락도 점점 뜸해지다가, 4학년땐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주로 나의 필요에 의해....그나마 최근 다시 연락이 닿았으니 다행이다....

처음 약속을 정할 때에는 녀석과 짝지를 볼려고 했는데, 그 친구의 짝지는 다른일정으로 인해 맞추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주 금요일에 저녁 약속을 잡게 되었다.

우리의 약속을 시기하는 듯 전날부터 갑자기 추워지더니 오후엔 눈이 잠깐 내리기도 하였다. 동장군의 무서운 칼바람과 추위가 매섭다....

그리고 녀석이 새로운 후배를 소개해 주었다. 같은 방 룸메이트인데, 졸업하기전에 한명 학교에 인연의 끈을 맺어줄 녀석이라고... 기특하게도 말이다. ㅎㅎㅎ

녀석은 4년내내 변한 구석이 없는 것 같다. 항상 밝고 활기차면서 애교덩어리이다. 새로 소개 시켜준 친구도 밝고 활기찬 것 같다.

녀석에게 미안한 것은 잘 대해준 것도 없는데 이번에도 선물을 전해주는데... 과연 내가 받을 만 한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도 방학전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선물을 주었는데, 이번에도..
이번 선물은 건강을 챙기라는 의미로 건강 음료로 준비했다고 한다.

더불어 녀석은 아쉬운게, "나와 잘 어울리는 분을 소개시켜줄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ㅎㅎㅎ 그러면서 옆에 있는 후배에게 짐을 떠넘긴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제는 고향인 익산에서 새로운? 삶을 살 거라고 한다. 아니 배운 것을 토대로 지역에서 활동을 하겠다고...
녀석이 가는 길엔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하면서...

2008년 12월 4일 목요일

"라온아띠"친구들이 베트남에서 보내온 편지(2)

나른한 오후..
천안중학교에서의 오후 수업을 마친 후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버스안에서 잠과의 처절한 전투에서 패배한 후 사무실 책상에 앉아 쉬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하니 책상 위에 항공 우편물이 놓여져 있다.
나에게 항공 우편을 보낼 사람이 없을텐데.. "혹 누구지"하는 마음과 잠시나마 설레이게 된다. 지난번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아닐거란 생각이 들면서. 혹여 베트남에 간 "라온아띠" 친구들이 아닐까햇는데.... 주소를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베트남에서 보내온 것이다.


아무튼 "편지란 녀석"은 반갑고 고마운 존재이다.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고 따뜻하게, 편안하게 해 주니까 말이다.
편지봉투안에는 장문의 편지가 2장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나에게, 다른 하나는 총장님에게 보낸 것이다.
학창시절 MT 혹은 다양한 활동에서 빠지지 않고 통과의례로 진행되었던 돌림편지(롤링페이퍼) 형식으로 5명이 한 부분씩 맡아 한자 한자 정성껏 보내온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글씨가 엉망이라, 워드를 활용해서 썼는데 말이다.

편지글을 요약하면 라온아띠 친구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베트남 현지 유치원과 지역에서 프로젝트 과제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고 하니 친구들이 너무나 기특하다.
그리고 라온아띠 홈페이지에는 올리지 못한 이야기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뒷담화는 날밤을 세워도 다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하니 사뭇 기대가 된다. 필자 역시 아무래도 그 날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녀석들의 왁자지껄하면서 옥신각식 혹은 배를 잡고 웃는 녀석, 혹은 삐치는 녀석들.. 아마 표정들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뭐든지 잘 할 친구들이며, 항상 믿음이 가는 친구들이지만.... 다시 한번 "라온아띠" 친구들 홧팅이다.

2008년 11월 30일 일요일

"Paul & Gupta"의 연락을 받다

실로 오랫만에 "Paul & Gupta"의 이메일 연락을 받게 되니 기분이 좋다.
"Paul & Gupta"를 인천공항에서 만나던 날이 젓가락데이 그러니까 2008년 11월 11일로 대략 20여일만에 소식을 접한 것이다. 물론 먼저 연락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영작의 한계로 인하여..

그날 당일 저녁 비행기로 인도행 비행기를 탔으니까.
개인적 생각으론 "인도 도착후 바로 연락이 오길 바랬지만... 연락이 없어 조금은 서운했다. 한편으로 혹 연락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기에 연락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국인 정서를 내세우게 되니까... 한편으론 조금은 서운한 감정이....
물론 문화와 풍습이 다르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도....ㅎㅎㅎ".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웃긴다. 나 역시 미국의 지인들에게 자주 연락을 하지도 못하면서.. 서운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그렇지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에 잘 도착했다는 메일과 한국에서의 잠깐 동안이지만 좋은 추억을 갖게되었다는 연락을 주니 기분이 좋다.
최근 인도에서의 테러가 발생했다는 언론을 접했을 때 혹여 불길한 생각을 하게되었는데. 이렇게 미국에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니... 이제서야 안심이 된다.

아래의 글은 "Paul & Gupta"가 보내온 글을 전문을 실었다.

Hello Wusu Kim:
We are now back from our trip to India. It was a great trip after 15 years.
We would like to thank you for your time in Seoul.
We really enjoyed your company.Seoul is a nice city.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efforts in getting my eye-glassesback from the bus.
Also thank you for the gifts.
Please stay in touch.
Paul & Geeta Gupta

2008년 11월 15일 토요일

미술을 배우다(3)

블로그를 통하여 배우고 있는 소묘를 올린지 오랫만인 것 같다.
처음 몇 회는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배우던 그림의 진척상황과 느낌 등을 블로그에 표출했었는데, 미술학원을 나가는 횟수가 주3회에서 2회로 줄어듦에 따라 그림을 올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대상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진 이유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이유 즉 소질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에는 주말마다 화첩을 가져오면서 그동안 그린 그림을 올렸지만, 최근에는 화첩을 계속해서 화실에 놓았기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는 그동안 그린 그림을 소개할 시간이다. 첫번째 그림은 많이 익숙할 것이다. 맞다. 지난번 블로그에 처음으로 선 보였던 호박꽃으로 우측의 그림이 완성작이다. 조금더 손을 봐야만 완전한 작품이 될텐데... 사진속의 호박꽃 그림을 표출하기가 조금은 어려워 여기엣 마무리하였다.


우측의 두번째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알겠죠. 예 맞습니다. 장미꽃이죠. 아름다운 꽃일수록 가시가 많다는 장미. 장미의 첫 습작은...말을 안 해도 알겠죠. 예 실패작입니다. 나름 열시미 그림을 그렸지만. 뭔가 어색하고 여기저기 손길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다시 과감하게 처음부터 그림을 그린거죠. 물론 학원에서 지도하시는 선생님의 도움이 매우 컸답니다. 만약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그림은 아마 힘들겠죠. 이렇게 사진을 통해서 표출하니 종이를 통해 보는 느낌과 상당히 다르다. 화면을 통해 본 느낌은 배경 부분이 약간 누렇게 빛 바랜 종이의 질감을 주기에 조금더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 든다. 반면 종이 위에 그려진 장미의 경우 비록 흰색 바탕이라 하지만 연필가루의 분말이 여기저기 묻으면서 손때 묻은 느낌과 명암의 질감이 화면을 통해서 보는 것보다 좀더 진해보인다.


세번째 그림은 벚꽃이 만발한 가지위에 새 한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이다. 벚나무의 질감과 벚꽃보다는 새에게 촛점을 두고 그린 그림이다. 네번째 그림속의 비행기는 아마도 20C초의 프로펠러 비행기로 아직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이기에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앞서의 그림들은 그동안 배운 것을 기초로 그린다고 하지만, 막상 이젤위에 하얀 도화지를 놓고 연필을 잡게 되면 그동안 배운 것은 모두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가고 부분적인 것만을 보게 된다. 원장님과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은 전체를 보면서 명암의 덩어리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부분을 중심으로 그리게 된다. 또한 그림의 기본이 되는 도형과 명암, 투시 역시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갈 때마다 즉 그런 실수를 되풀이할때마다 나 자신이 왜 이리 작아만지는지..
역시 그림은 나에게 힘이 든다는 것을 새삼느끼게 할 때마다 나의 의지도 조금은 작아질때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드디어 완성했다는 희열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니 나에겐 또 다른 행복이며, 이것이 배우는 마력이란 생각이 든다.

2008년 11월 12일 수요일

Paul과 Gupta를 만나다..

11월 11일 "젓가락데이".. 남들은 "빼빼로데이"라고 부르는데, 난 "젓가락데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단순하다. 젓가락 두짝이 모인 날이고, 젓가락은 동양권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문화의 아이콘이기에, 최근의 상술에 의해 태어난 "빼빼로데이"보단 훨씬 정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서설이 좀 길었다.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서 Paul을 만나야 하기에 전날 인천에 사는 누나네 집에서 잠을 청했다. 전날 늦게 집을 방문했다고 그리고 잔소리아닌 잔소리를 듣고 저녁을 간단히 먹은 후 인터넷을 통해 가는 방법을 확인한 후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일찍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6시에 누나집을 나와 부평역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갔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우체국을 찾지 못해 조금 헤메다가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은 후 반대편 정류장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공항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당초 메일에는 7시에 도착한다고 해놓고 조금 늦게 도착하게되니 조금은 미안하다. 그렇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출국소속을 마치면 30분정도 소요시간이 예상되니 늦지는 않은 시간일거라는 혼자 위안을 삼으며 공항내에서 전광판을 확인하면서 입국 게이트를 열시미 찾았다. 그런데... 입국 비행기와 항공사를 확인해보니 아뿔사 한시간 일찍 도착한 것이 아닌가..큰일이다. 그래도 한편으론 벌써 입국 소속을 끝내 나오지는 않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국게이트앞에서 서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멈추지 않는다.

게이트 입국에서 조금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Gupta와 Paul이 나를 먼저 알아본다. 나 역시 그들을 보고 악수와 가벼운 포응을 한 후 간단한 인삿말을 나누고 상훈씨가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인사말을 전하고 공항내의 커피샵으로 가서 커피와 Black Tea, 빵을 구입해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선물들을 Paul과 Gupta에게 주었다. 선물은 앞서 말한데로 모임 선생님들이 만들어주신 메모지와 탈 그리고 보자기이다. 선물을 건내주니 Gupta와 Paul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기분이 좋다.

간단한 요기후 오늘 일정-서울의 창덕궁과 떡 박물관, 인사동거리-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한 후 가방은 보관함에 맡겨 둔 후 가벼운 차림으로 서울행 리무진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서 내렸다. 당초 리무진 버스의 종점이 광화문이라, 경복궁 주변으로 예상을 했는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광화문의 코리아나호텔앞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아예 공항에서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창덕궁앞에서 내려 갔으면 덜 걸었을텐데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서울로 가는 길에 약간의 교통체증이 있었는데, Paul은 짜증이 났는지 공항으로 갈 때는 열차를 이용하자고 한다. 광황문에 내린 후 너무 이른 시간이라 창덕궁 앞의 떡 박물관까진 걸어가기로 하였다. 생각보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떡 박물관에 가더라도 10시에 문을 열기에 걸어가면 10시가 조금 넘을 거란 생각을 했는데, 걷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바깥 날씨가 춥다고 했음에도 괜찮다는 Paul과 Gupta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조금은 추운지 몸을 움크리고 있다. 약20여분 걸게 되면 몸도 따뜻해질 거란 생각을 했지만, 막상 걷다보니 몸에서 열이 나는게 아니라 볼과 귀가 더 벌그스레졌으며 입에선 입김이 서렸다. 그리고 떡박물관까진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 더 걸렸다.

떡 박물관에 도착후 Paul과 Gupta가 너무 추워보여 차 한잔을 마신 후 박물관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바로옆의 떡 까페에서 Black Tea 시켰는데 마침 Black Tea가 떨어졋다고 한다. 모과차 등의 전통차 또는 커피를 권유했는데, Paul은 커피를 시키고 Gupta는 대신 뜨거운 물을 요구한다. 조금은 얄밉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와 전통이 다른 나라이지만, 다른 나라에 왔으니 그 나라의 문화인 음식을 맛보는 것도 괜찮을텐데..더구나 같은 동양계, 비록 인도계미국인이지만 말이다.

차를 마신후 떡 박물관에 들어갔다. 가던날이 장날이라고, 박물관안에는 유치원에서 견학을 왔는지 시끌벅적하다. 떡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도구와 쌀, 떡의 종류, 관혼상제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하면서 박물관 내부를 돌아보는 것으로 박물관 일정은 마무리하였다.

창덕궁은 외국인을 위한 영어해설을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같이 움직였다. 같이 동행을 하면서 서툰 언어로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몇 가지 추가 설명을 하면서 같이 움직였다. 궁궐의 건물과 후원의 경치를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흘린다. 특히 후원의 가을단풍을 보고는....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대신할 수 없는것 같다. 조금 더 영어실력이 월등하다면 자유롭게 내가 아는 상식을 설명해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궁궐안내는 1시간30여분으로 일정을 마무리한 후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니 점심을 싸왔다고 한다. 싸온 점심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하니 야속하기만 하다. 손님이기에 한국음식 중 정식을 맛보게 할려고 했는데, 잠깐 들린다하더라도 문화가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텐데... 내가 너무 그들을 내 입장에서만 본 것 같다.

창덕궁 매표소 옆의 매점에서 음료를 산 후 싸온 음식을 먹고 다음 일정인 인사동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식사 후 걸어서 인사동거리에 다다르니 많은 외국인들이 거리를 누빈다.
많은 외국인들이 들리는 곳이기에 천천히 인도우쇼핑을 할려고 하는데,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상점안으로 들어가서 인도우쇼핑을 해도 괜찮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다고 하니 맥이 풀린다. 갤러리의 경우 외국에도 많이 있기에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줄 것 같지 않아 한국 고가구를 판매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 역시 가던날이 장날이라고 휴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별관심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대충 거리를 둘러본후 공항으로 다시 갈 수 밖에 없었다.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단 한시간정도 빨리 공항에 도착한 것 같다. 공항에서 아침에 버스에 놓고 내린 안경을 찾은 후 사우나를 원하기에 사우나 시설이 있는 곳을 확인한 후 짐을 맡겨 두웠던 곳에 가서 짐을 찾은 후 간단한 커피와 빵으로 저녁을 먹은 후 아쉬움을 뒤로 한체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였다. 더불어 빨리 결혼하면 좋겟다는 말과 시간되면 다시 미국으로 놀러오라고...

파란만장했던 하루가 지나간다. 공항에서 버스를 30여분 기다린후 나는 천안으로, Paul과 Gupta는 다시 비행기로 인도의 델리로...

2008년 11월 9일 일요일

가을 오서산에 다녀오다

지난 11월 1일, 오늘도 늦잠이다. 계속적으로 피곤이 쌓이는 것 같다.
어제 저녁에 인터넷으로 열차 예매를 하면서 열차 시간에 맞춰 일어나기로 결심을 했지만, 그 놈의 잠귀신은 나를 악의 구렁이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열차 예매시간에 임박해 일어나서 여유롭게 씻지 못하고 대충 빨리 씻은 후 자전거를 타고 아산역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누나 전화다. 무슨 일이 있는가보다. 아침 일찍 전화를 하는 경우는 시골을 가거나 아니면 무척 드문데...
아침 일정에 쫓겨 누나와의 전화통화를 대충 수습한 후 열시미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아산역으로 달렸다. 때론 신호를 무시해가면서..꼭 열차를 타야겠다는 신념하에서 말이다.
겨우 시간에 맞춰 아산역에 도착, 다행히도 열차가 조금 연착되어 숨을 고르며 느긋이 열차를 기다리며,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끝내니 장항선 열차가 오고 있다.
매년 한번쯤은 가을 오서산에 가봐야지... 산등성이의 억새가 무척 반기겠지 하는 설레임으로, 요즈음 마음이 무거웠는데...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올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혼자만의 가을 열차여행과 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열차안은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과 가족, 교복차림의 학생, 대딩으로 젊은 남녀들, 나 처럼 혼자 창 밖을 응시하는 이, 책을 보는 이 등 다양한 모습들이다.

등산복을 입는 이들은 동문인 것 같은데...조금은 교양이 없다. 아니 무지무지하게 교양이 없다. 시끌벅적 아무래도 재래시장의 한 복판에 있는듯하다. 차장이 지나가면서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을 하는데도 들은척도 하지 않는다.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

기차여행은 대략 한시간 반정도, 열차안의 사람들로 인해 조금은 짜증이 났지만, 드넓은 억새밭이 나에게 자꾸 손짓을 한다는 생각에...그정도의 불편은 감수 할 수 있다.

광천역에서 내려서 김밥과 약간의 간식을 구입한 후 시내버스를 타고 오서산으로 향했다. 시내버스에는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모두들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약 십여분 정도 버스를 탄 후 오서산입구에 내려 등산코스를 확인한 후 서서히 산으로 올라갔다.



홍성군과 보령시에 접한 금북정맥의 한줄기인 오서산. 가을 억새로 매년 유명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하는 오서산, 그러나 나에겐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준 산이다. 억새에 대한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하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산 능성이의 억새밭이 미약한 점과 정감없는 정암사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매력적이었다.



천안의 광덕산보다 높으며, 충남에서 계룡산 다음으로 높은 오서산으로 산 입구의 주차장과 등산로에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번 산행은 초행이라서 우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를 이용하면서, 산을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좁은 등산로, 단풍의 오색입으로 갈아입으면서 만발의 겨울준비에 여념이 없을 녀석들에겐 너무나 많은 등산객은 이들에겐 감당하기가 버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여러 가지 고민과 무기력함, 나태함에서 벗어나고파 오랫만에 떠난 등산이었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등산객과 볼품이 적었던 억새 녀석은 오히려 나를 지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그렇지만, 산을 오르면서 등에 흐르는 땀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들은 자아를 일깨우는 또 다른 자극제이기도 하였다.
능성이의 듬성듬성있는 억새밭, 오서산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안식년제도를 도입함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보존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의 관리상태로는 얼마가지 않아 폐허만이 남는 오서산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옛 오서산을 아는 이들과 억새의 명성만을 듣고 찾아온 등산객은 현재의 모습을 보곤 더 이상 오서산을 찾지 않을 것 같다. 본인 역시 억새의 명성만을 듣고 갔는데, 감동보다는 실망감이 더 크기에, 단순 등산이라며 모를까 억새를 보러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생각이다.

산 정상에서의 막걸리 한잔 혹은 커피 한잔은 마음의 여유를 주지만, 영리만을 추구하는 영업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산을 , 자연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편리함을 추구하기에 여기저기에 버려진 혹은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여기저기 감춰든 쓰레기들을 보면서 우리의 자화상을 보니 마음이 착찹하기만 하다. 내 집 혹은 사무실이 더러우면 깨끗하게 치우면서 내가 잠시 산에게 빌려 걸터앉은 자리엔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이면서 말이다. 자연에게 아니 산 친구에게 미안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하기만 하다.

산을 내려올 때는 올라오던 길이 아닌 조금은 다른 등산로를 선택하였다.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한번 다닌 길은 되도록이면 다시 가지 않는 성격이기에 동일 노선을 피해 다른 노선을 선택하였다. 올라올 때보다 사람들도 적었으며 경사도가 조금은 심한 편이어서 주변의 풍경을 살피면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산을 달려내려가듯 내려온 것 같다. 중간에 겨울잠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뱀을 볼 땐, 나도 모르게 머릿카락이 쭈빛쭈빛 곤두 서기도 하였다. 뱀을 본 후론 함부로 아무데나 걸터앉기엔 조금은 겁이나 제대로 앉아 쉬지도 못하고 줄곳 줄행랑을 쳤다.

중간중간 올라오는 등산객들은 볼 수 있었지만 내려가는 등산객은 없기에 조금은 외로움이,,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몇 몇 내려가는 등산객을 볼 수 있었으며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도로엔 생강, 콩, 고추, 은행, 밤 등의 농산물을 팔려고 나온 할머니,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좌판을 깔고, 산을 내려오던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농산물을 사는 모습을 조그마한 시골의 시장에 나온 느낌이 들었다. 시골의 소박하게 아기자기한 농산물을 파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차를 동원한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아닌 외지에서 온 농산물과 먹거리 장사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것은 궁극적인 목적인 것 같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인지. 아니면 농산물을 경작하면서 주말에 조그마한 판로를 마련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마을단위의 자치와 협력을 통해서 농산물 판로를 위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자본이 들어오는 것이 미덥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등산로와 마을입구의 입지 좋은 곳에 위치한 막대한 자본의 펜션과 먹거리 장사치를 보면서 산동마을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비록 생계를 위한 장사라하지만... 어떤 모델이 바람직한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에 가슴이 더욱 아프기만 하다.

한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가 오지 않아 광천역으로 걸어가기로 결심을 하고 버스를 타고 오던 길을 따라 길을 거닐었다. 가끔 버스가 오지 않나 뒤를 흴끔흴끔 돌아보긴 했지만, 40여분 넘게 걸어오면서 버스는 보지 못했다.

광천역에서 미리 예매한 기차표를 찾은 후 20여분을 기다린 후 열차를 타고 다시 천안으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Paul을 만날 기쁨을 만끽하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인도계 미국인 친구와 친구 가족을 만날 날이...
지난 5월 로타리클럽의 GSE프로그램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를 한달 동안 다녀온 적 있다.
첫 방문지인 Temeculla에서의 실질적인 첫번째 호스트주인이었던 Paul(Paul and Gupta, Ritesh)이 고향인 인도를 방문하면서 잠시 한국에 들린다고 한다. 비록 짧은 호스트 기간이었지만, 나 때문에 방을 비우게되어 불편했을 Ritesh, 식사와 여러가지 도움을 주고,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을 공감해주면서 들어준 Gupta, GSE일정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나를 여기저기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온 Paul.... 지금도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처음 이메일을 받았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귀국 후 이메일을 통한 연락외에 별도로 고마움을 표하지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연락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고 싶다는 문구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장거리 비행일지라도 한국을 방문해서 나를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읽게 되니 너무 기분이 좋다. 한편으로 나의 영어실력이 그 이후로 나아지지 않아 제대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두번째 이메일 교환중 잘못 이해로 인해 조금은 미안하지만, 새로 보낸 메일을 통해 Paul의 일정을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다. 서울에 많은 시간은 머물순 없지만, 그래도 한국의 대표적인 모습을 소개해주고 싶어 오늘은 인사동과 궁궐을 중심으로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덕수궁 답사중에는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때 아닌 가을비를 만났으며, 창덕궁은 너무 가서 궁궐 답사를 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인사동에서 약간의 선물을 준비하게 되어 다행이다. 선물은 선비탈과 보자기이다. 지난번에 인사동에 왔을 때 무엇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탈 혹은 병풍을 고민했는데, 오늘 막상 살려고 하니 어떤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여러가지 고민을 하다가 선비탈을 구입하니 조금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보자기로 선물을 쌀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맘에 드는 보자기를 찾긴 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렇지만, 선물을 받을 Paul을 생각하니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
지금 생각해도 보자기의 경우 한국의 실용성과 대표성을 알려줄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연말 혹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국의 호스트 가족들에게 보내줘야 하는데, 오늘 구입한 다양한 보자기를 선물로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걱정이 있다. Paul이 11일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하는데, 식사와 일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모르겠다. 장거리 여행으로 피로도 많이 쌓일텐데 그리고 먹을거리도.. 인사동 곳곳의 한정식집과 떡까페를 둘러 보긴 했지만 입맛에 맞을 지 걱정이다. 더불어 앞서 언급했지만 나의 짧은 영어 실력을 하루아침에 높일 수는 없고....평상시 영어 공부좀 많이 할 것 왜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2008년 10월 19일 일요일

도시의 얼굴 "그래피티"

도시의 얼굴 "그래피티(Graffiti)"란 주제로 천안시내 곳곳에 숨어 있는 모습을 담아보고자 한다. 한꺼번에 많은 자료들이 올라가진 못하더라도 조금 조금씩 천안의 모습들을 선보이고자 한다.

우선 "Graffiti(그래피티/그라피티)"에 대한 용어정의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 Graffiti는 미드 혹은 외화에서 많이 보았던 벽면 혹은 건물 등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하는 말로 "Spraycan Art" 혹은 "Aerosol Art"라고도 불리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Graffiti"의 어원은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 와 그리스어 'Sgraffito'라 하며, 유럽에서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서 자리를 잡았다.

사이 톰블리(Cy Twombly)·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은 낙서의 표현법에 관심을 보였고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아웃사이더 아트로서의 낙서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러한 "Graffiti"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말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 낙서가 범람하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반항적 청소년들과 흑인, 푸에르토리코인(人)들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다.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 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에 그렸다. 이것들은 즉흥적·충동적이며 장난스럽고 상상력이 넘치는 것들이었다. 랩 음악과 브레이크 댄스를 즐겼던 이들은 거리의 벽, 경기장, 테니스장, 지하철 전동차 등 가리지 않고 그릴 수 있는 곳에 그림을 그렸다.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낙서가 큰 도시문제이기도 하였다.

"Graffiti"가 도시의 골칫거리에서 현대미술로서 자리잡은 것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ring)의 공이 컸다. 바스키아는 정식 미술 수업을 받지 않았음에도 단번에 미술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그는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어설퍼 보이는 그림에 자신의 메시지(주로 자전적이야기·흑인영웅·만화·해부학·낙서 기호·상징·죽음과 관련된 주제)를 담아 표현하였다.

케이트 해링(Keith Harring)은 아이콘화된 사물을 그리는 "Graffiti"로 유명했다. 검은 종이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렸는데 주로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었다. 한편 로마의 미술상 클라우디오 브루나는 소규모 비영리화랑인 얼터너티브 스페이스에 "Graffiti" 전시회를 열면서 "Graffiti"는 미술 영역으로서 인정되었다.

"Graffiti" 미술은 1980년 '타임 스퀘어 쇼'에서 공식적으로 소개되었다. 해링·바스키아·리 퀴노니스·알레스 발라우리·앤드루·위튼·제파이어 등이 참여한 최초의 대규모 전시회였다. 또 시드니 자니스의 블루칩 갤러리에서는 '포스트 그래피티(Post Graffiti)'라는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해링의 《전시회》(1984), 《stop AIDS》, 바스키아의 《무제-붉은 남자 untitled-Red Man》(1981), 《호보 기호 Hobo Signs》(1982), 《무제-올랭피아의 하녀 Maid from Olympia》 등이 있다. .

"Graffit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모든 도시에는 "Graffiti"가 그려져 있어 일상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필자는 천안 소재의 다양한 "Graffiti"를 조명하고자 한다.

필자는 "Graffiti"를 중요한 도시공간내 미학으로 만난 디자인의 일환이며, 사회적 약자와 모든 계층들의 다양한 욕구와 불만을 표출한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 건물의 벽 혹은 담벼락에 분필 혹은 싸인펜, 볼펜 등의 필기구를 활용하여 상스러운 욕이나 성과 관련된 언어 등을 남발하면서 적은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Graffiti"와 동일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낙서를 과연 "Graffiti"로 이해하려는 이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Graffiti"와 낙서를 동일한 "Graffiti"로 이해한다.

아래 사진은 2008서울디자인 올림픽에서 사진을 찍은 "Graffiti"이다.

2008년 10월 13일 월요일

삶의 활력소들(2)

지금까지는 주로 학원활동과 나의 다짐 등에 대한 부분으로 일관한 듯 하다.

이제부터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을 하면서 나의 느낌과 열정, 관심 등을 표현하고자 한다.


첫 번째 녀석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는지. 대부분 사람들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을 할 것이다. 나 역시 이 그림만을 보고는 어떤 꽃이라고 말을 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되면 분면 실패한? 그림인데...ㅎㅎ 꽃잎과 줄기를 그리지 않아 더더욱 수긍이 가지 않을 것이다.

조금 설명을 하자면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길경, 도랏, 길경채, 백약, 질경, 산도라지로 불리으며, 산과 들에 자라고 꽃은 7∼8월에 하늘색 또는 흰색으로 위를 향하여 피고 끝이 퍼진 종 모양임. 봄·가을에 뿌리를 채취하여 날것으로 먹거나 나물로 먹으며, 주용 성분은 사포닌이며,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 함.


다음은 꽃 중에서 가장 못 생겼다고 불리우는 녀석이다. 이 역시 꽃잎 만을 그렸기에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아직 완성품이 아닌 미완성작이라 말이다. 현재의 상황은 꽃잎의 주름을 그리는 도중에 잠깐 외출?을 하면서 공개된 녀석이다. 꽃 잎의 주름들을 보다 더 그려야만 최종 완성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주름들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본인의 실력이 형편 없기에....
앞으로 좀더 수정을 하여 다시 블로그에 올라올 예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완성은 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금일 미진한 부분의 수정중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서...아마 언제 수정이 될 것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마도 그냥 패스할 경우의 수도 있음을 미리 알린다.

아직 이 녀석을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예브지 않은 여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이제서야 답을 알겠다는 분들이 있으니..예 맞습니다.
호박은 열대 및 남아메리카 원산. 한국에서 재배하는 호박은 중앙아메리카 또는 멕시코 남부의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동양계 호박(C. moschata), 남아메리카 원산의 서양계 호박(C. maxima), 멕시코 북부와 북아메리카 원산의 페포계 호박(C. pepo)의 3종이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은 동양계 호박으로 이는 삼국시대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재배됨.




앞으로 이처럼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 블로그를 통해 이 세상에 표출될 것이니 양해를 바라는 바이다.

2008년 10월 11일 토요일

삶에 대한 활력소들

사무실에서 하루 일과를 끝낸 후 자전거를 타고 학원으로 가는길이 즐겁다.

물론 그림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원 생활에 조금은 익숙해지는 것 같다.

학원에 처음에는 7시 시간을 꼭 맞추어서 갔었다. 사무실에서 조금 일찍 출발하여서 터미널에 수업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면 인근의 서점 혹은 기타 개인업무를 보면서 수업시간을 일부러 맞추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터미널에 도착하는데로 바로 학원으로 직행하니 조금은 학원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생들과는....공통의 주제와 목적의식도 없으니, 아마도 학원생들과의 익숙함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한다.

아래 녀석들 중 경찰 모자는 뱃지를 그리는데 매우 힘이 들었었다. 뱃지의 내용물을 정확히 몰라 유사하게 그리긴 했지만, 지금 다시 그리라고 하면 뱃지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 될 것 같다.
화병에 들어 있는 꽃무더기.. 국화의 꽃잎 하나하나와 꽃받침을 그리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다른 그림에 비해서 비교적 쉬웠던 장미녀석이지만, 꽃잎의 명암을 그리는 부분은 아직도 어렵다. 연탄과 줄 역시 질감을 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녀석들이다. 줄의 꼬인 부분은 특히나...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웠던 첼로 녀석...그 녀석은 기본 그림으로 첼로의 모양을 그리는데 가장 어려웠다. 또한 첼로의 끝 부분과 첼로 줄을 그리는데.... 만약 이녀석을 다시 그리라고 하면 아마도... 또 다른 첼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지난번 다짐을 한 것처럼 이번주부터는 주 2회로 블로그를 올릴 예정이다.
아직은 신변잡기 중심으로 진행이 되지만...향후에는 좀더 포괄적인 부분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2008년 10월 5일 일요일

미술을 배우다(2)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어느덧 한달이 조금 지났다. 아직은 여러가지 미숙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학원에서 주 3회 하루 3시간정도의 열정들을 쏟아내면 종이위의 형편없던 낙서처럼 어지럽고 지저분한 녀석들이 조금씩 모양새를 갖추어지게 된다.
항상 나의 미술에 대한 재주없음에 한탄을 하면서도, 내가 정열과 시간을 들이면서 조금씩 그림의 형태들이 갖추어지고 완성되면서 성취감과 자신감이 조금은 생긴다.
나도 열시미 배우면 나중엔...멋진 소묘를 완성하지 않을까 하는..내심 김칫국도 마시게 된다.

한달여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완성한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외에 몇 녀석들과 지금 그리는 녀석은 다음주를 기대하시라..ㅎㅎ



그동안 공짜에 물들여져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 손으로 구입하고 있다.
스케치북과 지우개. 그리고 미술연필.... 처음에 학원수강 신청을 하면서 필요한 재료들을 물었을때 종이와 연필을 이야기하면서 몸만 오라고 해서 촌넘 그냥 그말만 믿고 빈손으로 간지 어언 한달...
그림을 완성하면 새로운 종이가 필요했지만 모른척하고 버티고, 지우개가 다 달아도 그냥 모른척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실행으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스케치북과 연필 그리고 지우개 구입... 녀석들의 모습은 다음기회가 생기면 올리도록 하겠다.

아참.. 10월부터는 주2회로 횟수를 줄이기로 하였다. 영어 회화 역시 저녁시간에 수업을 진행하기에, 영어회화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미술수업 1회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올해 목표로 했던 일들이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성과?를 나타내기에 기분이 좋다. 아직은 완벽하게 만족하진 못하지만 말이다.

앞으로는 블로그 연재 횟수를 주1회에서 주2회정도로 늘릴 예정이다. 조금더 글 올리는게 익숙해지면 말이다.

2008년 9월 30일 화요일

미술을 배우다

예전부터 올해는 꼭 미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동안 의지부족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연수 기간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한 후 귀국 후 바로 학원을 등록하려고 했지만 그 놈의 귀차니즘때문에....


8월 여름휴가중 그동안의 귀차니즘을 타파하기 위해 터미널부근의 A학원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와 새로운 것을 배움으로서 마음의 허함을 메꾸고자 서둘러 학원으로 발걸움을 옮기게 되었다. (A학원은 선배 활동가의 남편이 운영하는 학원임)

원장님과의 상담에 의하면 적어도 "소묘는 최소 5~6개월정도는 배워야 한다"고 한다. 당초 계획은 최소 내년 1월까지 무조건 학원을 다닐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이다... 부족한 부분은 그 후 학원을 계속적으로 다니거나 배우면 될 것 같다.

그리고 휴가를 마치고 8월 27일부터 주 3회,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과 중학생, 그리고 대학생과 성인 몇 분이 저녁시간에 열정으로 미술을 배우고 있다.

선긋기를 첫 수업으로 시작하여 연필의 농도 배우기, 육면체와 명암 등을 배웠다. 익숙하지 않는 손놀림이라 팔이 아프고 조그마하고 익숙하지 않는 의자에 엉덩이는 좀이 쑤시기도 한다.
때론 그림을 그리는 정막감과 자신과의 싸움과 정적으로 인해 가끔 고개를 떨구기도 한다. 그럴때면 잠을 떨구는 커피한잔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그 간절함의 욕망을 해결할 때면...


하루 수업시간은 3시간이지만...어떤 날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가고, 때론 시간이 지루할 때도 있다. 특히 소묘의 데생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더더욱 말이다.ㅋㅋ

상기 그림은 내가 직접 그렸지만... 아시죠, 학원에서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신다는거 말입니다.

2008년 9월 21일 일요일

우편엽서로 안부를 전하다

추석 연휴를 보내고 사무실 첫 출근...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선물(엽서)이 제 자리에 놓여 있다.
참으로 반가운 녀석이다. 아니 실로 오랫만에 받아보는 녀석이다.

지난 5월, 미국에 잠시 들렸을 때 이 녀석에게 손을 내밀어 볼려고 시도를 했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한체 무의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 녀석을 후배들로인해 오랫만에 이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녀석을 보내 준 친구들은 지난 여름에 지역와이에서 열시미 열흘간 자원봉사를 해 준 친구들이다.

열악한 근무여건속에서도 불평없이, 참으로 열시미 했던 친구들이라 매일매일 안부(홈페이지를 통해서)를 체크하면서 몸건강히..그리고 많은 것들을 얻어오기만을 마음속으로 빌 뿐이었는데...

이번주에는 답장을 보내주어야 할 듯 하다..
그 동안 귀차니즘과 매너리즘에 빠졌는데... 이제는...

다음은 베트남에서 보내온 편짓글입니다.


To 간사님께...

간사님.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희 베트남팀은 이곳 호치민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저희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YMCA로 출퇴근하고 있어요.
어느날 이과정을 비디오로 담으려고 영상을 찍다가 비디오 카메라를 빼앗길 뻔 한 적이 있어요^^
저희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요^^. 그래서 그 후로는 밖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꺼내지 않고 있어요..^^
호텔 주인 가족들이랑도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답니다.
너무나도 유쾌하고 재미있는 가족들이라 이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어요^^
사이공 시내도 2-3번 갔다오고 아, 베트남어도 많이 배워서 지금은 받아쓰기도 하고,
하루 일과에 대해 말하는 것도 할 수 있어요.


푸핫^^

지금 한국은(이 편지를 받을 때 쯤) 추석이 지나고 꽤 쌀쌀해졌겠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감기조심하세요~ Y 식구들에게 저희 안부 전해주세요!

그럼 몸 건강히 안녕계세요

-베트남 호치민에서 박아람 외 4명 올림-

2008년 8월 26일 화요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다

자전거를 출퇴근 교통수단으로 사용한지 8개월이 조금 넘는다.


NGO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녹색교통수단을 이용하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너대의 자전거를 분실한 후 의욕이 상실되어 편리함만을 추구하면서 자동차를 이용하였다.


소유하고 있던 자동차가 이상하게 됨에 따라 과감하게 퇴출시키고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구입하여 이용하고 있다. 자전거 이용전에는 하루 운동량이 매우 적은 편이었지만. 출퇴근과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한 후 조금은 운동량이 늘어 건강도 덤으로 챙기게 되었으며, 과거보다 체중도 약 5KG정도 줄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체형은 앞볼록뒷볼록이다. 아마도 내년에는 조금은 멋들어진 체형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지만 말이다


비 혹은 눈이 오지 않는 날은 항상 나의 애마?인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애마도 때론 불편할때가 있다. 갑자기 맑던 하늘이 비구름과 함께 하늘이 어두어지면서 비가 올때 혹은 비가 와서 도로가 젖어 있을때, 때론 장거리로 시내지역을 벗어난 곳을 가야할 땐 조금은 애매하다. 물론 장거리의 경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지만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곳 혹은 시간이 촉박할 경우에는 다른 교통수단을 마련해야하나 새로운 고민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내구간의 경우엔...망설임없이 자전거를 타고 나가게 된다.


이러한 나의 특별한 교통수단인 자전거 녀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심 사나운 주인장의 배려로 여기 저기 상채기가 많이 나 있다. 페달 부분은 물론 안장부분, 핸들, 그리고 핸들부분과 기어부분은 장시간 악천후에 방치해둔 영광의 상처도 있다. 또한 지난 7월에는 거금의 돈을 들여 뒷바퀴 기어를 바꾸기도 하였다.
주인을 잘 못 만나 고생하는 녀석이다. 예전의 자가용도 그랬지만 말이다.ㅎㅎ


녀석의 차대번호는 F7D16984이며, 앞 바퀴 후크 윗부분에 있어 다른 자전거와는 위치가 조금 상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