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9일 일요일

가을 오서산에 다녀오다

지난 11월 1일, 오늘도 늦잠이다. 계속적으로 피곤이 쌓이는 것 같다.
어제 저녁에 인터넷으로 열차 예매를 하면서 열차 시간에 맞춰 일어나기로 결심을 했지만, 그 놈의 잠귀신은 나를 악의 구렁이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열차 예매시간에 임박해 일어나서 여유롭게 씻지 못하고 대충 빨리 씻은 후 자전거를 타고 아산역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누나 전화다. 무슨 일이 있는가보다. 아침 일찍 전화를 하는 경우는 시골을 가거나 아니면 무척 드문데...
아침 일정에 쫓겨 누나와의 전화통화를 대충 수습한 후 열시미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아산역으로 달렸다. 때론 신호를 무시해가면서..꼭 열차를 타야겠다는 신념하에서 말이다.
겨우 시간에 맞춰 아산역에 도착, 다행히도 열차가 조금 연착되어 숨을 고르며 느긋이 열차를 기다리며,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끝내니 장항선 열차가 오고 있다.
매년 한번쯤은 가을 오서산에 가봐야지... 산등성이의 억새가 무척 반기겠지 하는 설레임으로, 요즈음 마음이 무거웠는데...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올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혼자만의 가을 열차여행과 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열차안은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과 가족, 교복차림의 학생, 대딩으로 젊은 남녀들, 나 처럼 혼자 창 밖을 응시하는 이, 책을 보는 이 등 다양한 모습들이다.

등산복을 입는 이들은 동문인 것 같은데...조금은 교양이 없다. 아니 무지무지하게 교양이 없다. 시끌벅적 아무래도 재래시장의 한 복판에 있는듯하다. 차장이 지나가면서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을 하는데도 들은척도 하지 않는다.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

기차여행은 대략 한시간 반정도, 열차안의 사람들로 인해 조금은 짜증이 났지만, 드넓은 억새밭이 나에게 자꾸 손짓을 한다는 생각에...그정도의 불편은 감수 할 수 있다.

광천역에서 내려서 김밥과 약간의 간식을 구입한 후 시내버스를 타고 오서산으로 향했다. 시내버스에는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모두들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약 십여분 정도 버스를 탄 후 오서산입구에 내려 등산코스를 확인한 후 서서히 산으로 올라갔다.



홍성군과 보령시에 접한 금북정맥의 한줄기인 오서산. 가을 억새로 매년 유명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하는 오서산, 그러나 나에겐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준 산이다. 억새에 대한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하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산 능성이의 억새밭이 미약한 점과 정감없는 정암사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매력적이었다.



천안의 광덕산보다 높으며, 충남에서 계룡산 다음으로 높은 오서산으로 산 입구의 주차장과 등산로에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번 산행은 초행이라서 우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를 이용하면서, 산을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좁은 등산로, 단풍의 오색입으로 갈아입으면서 만발의 겨울준비에 여념이 없을 녀석들에겐 너무나 많은 등산객은 이들에겐 감당하기가 버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여러 가지 고민과 무기력함, 나태함에서 벗어나고파 오랫만에 떠난 등산이었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등산객과 볼품이 적었던 억새 녀석은 오히려 나를 지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그렇지만, 산을 오르면서 등에 흐르는 땀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들은 자아를 일깨우는 또 다른 자극제이기도 하였다.
능성이의 듬성듬성있는 억새밭, 오서산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안식년제도를 도입함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보존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의 관리상태로는 얼마가지 않아 폐허만이 남는 오서산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옛 오서산을 아는 이들과 억새의 명성만을 듣고 찾아온 등산객은 현재의 모습을 보곤 더 이상 오서산을 찾지 않을 것 같다. 본인 역시 억새의 명성만을 듣고 갔는데, 감동보다는 실망감이 더 크기에, 단순 등산이라며 모를까 억새를 보러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생각이다.

산 정상에서의 막걸리 한잔 혹은 커피 한잔은 마음의 여유를 주지만, 영리만을 추구하는 영업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산을 , 자연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편리함을 추구하기에 여기저기에 버려진 혹은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여기저기 감춰든 쓰레기들을 보면서 우리의 자화상을 보니 마음이 착찹하기만 하다. 내 집 혹은 사무실이 더러우면 깨끗하게 치우면서 내가 잠시 산에게 빌려 걸터앉은 자리엔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이면서 말이다. 자연에게 아니 산 친구에게 미안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하기만 하다.

산을 내려올 때는 올라오던 길이 아닌 조금은 다른 등산로를 선택하였다.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한번 다닌 길은 되도록이면 다시 가지 않는 성격이기에 동일 노선을 피해 다른 노선을 선택하였다. 올라올 때보다 사람들도 적었으며 경사도가 조금은 심한 편이어서 주변의 풍경을 살피면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산을 달려내려가듯 내려온 것 같다. 중간에 겨울잠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뱀을 볼 땐, 나도 모르게 머릿카락이 쭈빛쭈빛 곤두 서기도 하였다. 뱀을 본 후론 함부로 아무데나 걸터앉기엔 조금은 겁이나 제대로 앉아 쉬지도 못하고 줄곳 줄행랑을 쳤다.

중간중간 올라오는 등산객들은 볼 수 있었지만 내려가는 등산객은 없기에 조금은 외로움이,,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몇 몇 내려가는 등산객을 볼 수 있었으며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도로엔 생강, 콩, 고추, 은행, 밤 등의 농산물을 팔려고 나온 할머니,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좌판을 깔고, 산을 내려오던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농산물을 사는 모습을 조그마한 시골의 시장에 나온 느낌이 들었다. 시골의 소박하게 아기자기한 농산물을 파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차를 동원한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아닌 외지에서 온 농산물과 먹거리 장사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것은 궁극적인 목적인 것 같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인지. 아니면 농산물을 경작하면서 주말에 조그마한 판로를 마련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마을단위의 자치와 협력을 통해서 농산물 판로를 위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자본이 들어오는 것이 미덥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등산로와 마을입구의 입지 좋은 곳에 위치한 막대한 자본의 펜션과 먹거리 장사치를 보면서 산동마을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비록 생계를 위한 장사라하지만... 어떤 모델이 바람직한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에 가슴이 더욱 아프기만 하다.

한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가 오지 않아 광천역으로 걸어가기로 결심을 하고 버스를 타고 오던 길을 따라 길을 거닐었다. 가끔 버스가 오지 않나 뒤를 흴끔흴끔 돌아보긴 했지만, 40여분 넘게 걸어오면서 버스는 보지 못했다.

광천역에서 미리 예매한 기차표를 찾은 후 20여분을 기다린 후 열차를 타고 다시 천안으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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